4월의 시인 정영효, 독자들과 '詩 토크쇼' 가져"시인과 자아가 소통이 잘 될 수록 좋은 시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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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동네 시심당' 4월의 시인 정영효와의 만남이 지난 8일 북티크카페에서 열렸다.
    ▲ '문학동네 시심당' 4월의 시인 정영효와의 만남이 지난 8일 북티크카페에서 열렸다.

      

    뭔가를 채우고 싶다면 포카리스웨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공허한 마음은 남자친구로도 채울 수 있죠.


    시인 정영효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얘기가 흘러나오자 좌중은 순간 웃음바다로 돌변했다.

    지난 8일 '북티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4월의 시인'으로 선정된 정영효가 직접 나와, 독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이색 토크쇼'로 진행됐다.

    이날 '왜 시집을 읽느냐'는 정영효의 돌발 질문에 독자들은 "무언가를 채우고 싶어서" "감정들을 표출하기 위해" "마음이 헛헛해서" 등 다양한 대답을 쏟아냈다.

    이에 정영효는 "시집을 읽는 것은 시인과 시인의 자아 그리고 독자가 소통을 하기 위함"이라며 "시인과 자아가 소통이 잘 될 수록 좋은 시가 나온다"고 말했다.

    시인이 있고 시인 안에 자아가 있습니다. 시인과 시인 속에 있는 자아가 소통을 하죠. 소통이 잘 될 수록 좋은 시가 나옵니다. 그러면 독자들과도 소통이 잘 돼죠. 역설적으로 소통이 잘 되는 글이 좋은 글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소통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며 "시인은 시인으로서 시를 쓰고. 독자는 독자로서 시를 읽는데, 그 의도를 굳이 독자가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시인은 시인으로서 시를 쓰고요. 독자는 독자로서 시를 읽죠. 가끔 시를 읽을 때 시인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시인의 의도대로 굳이 독자가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봐요.

    독자는 독자가 느끼는 대로 시를 읽으면 됩니다. 시인도 그래요. 시나 글을 쓸 때 어떤 걸 가정하고 쓰면 합평을 위한 글이 돼 버립니다. 칭찬을 받을지는 몰라도 오래 가진 못하죠. 결국 좋은 시란, 좋은 시를 쓴다는 건 '내 목소리'를 내는 일입니다.


    '4월의 시인'의 주인공이자, <문학동네 시심당>의 사회자 자격으로 마이크를 쥔 정영효는 먼저 독자들의 빈틈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을 던지며 토크쇼를 이끌어 가는 능수능란한 진행 솜씨를 선보였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그는 '이 자리에 시를 쓰는 사람이 있냐'는 기습 질문을 던졌다.

    아무도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영효는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일본인들이 35권을 읽을 때 한국인들은 겨우 10권을 읽는다는 기사를 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기사를 보면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책을 적게 읽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영화는 챙겨 보고 여행까지 다니는 걸 보면 바쁘다는 건 그냥 핑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대체 왜 책을 읽지 않는걸까 라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 부터 책을 읽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영광스럽게도 여기 함께 자리한 분들은 책을 많이 읽고, 게다가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라며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분명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다음은 정영효와 독자들의 일문일답

    -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 양로원에 가면 많아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집에서 자주 쓰는 편입니다. 12시가 넘으면 영감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 오세요. 글쓸 때 감각이라는 게 있는데, 머리가 번쩍일때 메모도 자주하고 책에다 줄을 자주 긋기도 하죠. 그런데 정작 메모를 해야 하는 순간, 메모를 못하는 일이 허다해요.

    - 이번이 첫 시집인데, 책이 나왔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 첫사랑을 만난 기분? 그래서 나중에 또 만나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첫 시집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잘 쓸 걸' 같은 약간의 후회는 하고 있어요.

     - 일반인도 시를 쓸 수 있을까요?

     ▲ 일반인들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저도 일반인이고 직장인이었어요. 결국에는 의지인 것 같습니다. 각각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본인이 쓰고 싶다면 절대로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시 소재는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 큰 관념들이 머리속에 떠오르면, 조금씩 고민을 하기 시작해요. 예를 들면 어떤 아저씨가 자리를 양보하라고 말하면, 집에 가면서 양보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왜 내가 양보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게 되죠. 그렇게 나온 시는 '착하게 살자'가 될 수 있겠지만, 큰 관념으로 부터 시작해서 파생됩니다. 글이라는 게 잡생각도 많이 들고, 계속 개입을 하다보면 다른 방향으로 많이 가기도 해요.

    또 쓰는 사람마다 패턴이 다 달라요. 친분이 있는 어떤 시인은 리얼리즘으로 쓰는데, 그 분은 인터넷을 뒤져 한시간 동안 바라본다고 해요. 그 분 말대로 저도 모니터를 한시간 동안 바라봤는데, 눈만 아팠어요. 개인마다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죠. 본인 패턴을 만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글을 써야하는 패턴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소재가 시로 될 가능성이 커져요.

    - 아끼는 시가 무엇인가요?

     ▲ 작년 4월 16일에 누구나 비슷했겠지만, 뭐지? 하는 생각에 휩싸여 쓴 시가 '해결책'이라는 시였어요. 이 시를 쓸 때 동기보다는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죠. 그때 계단에서 담배를 피다가 시를 생각했는데, 다시 그날이 찾아왔으니 그 시를 아낀다고 말하고 싶군요.


    정영효는 남해와 부산에서 자랐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지난 1월 첫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을 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정영효의 시들은 다 말해지지 못한 나머지의 것들을 가리킨다. 정영효의 시를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대상의 한쪽을 선택해 완결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제목 바깥에 존재하는 가능태(可能態)의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려는 시인의 태도다.

    '계속 열리는 믿음'을 보면 '생각하다' 같은 목적어의 자리까지 채우는 동사가 자주 등장한다. '생각하다'를 통해 생각의 대상을 자기의 불확실한 내면으로 그리고, 시 속 화자들의 의미를 확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무궁무진한 의미를 획득하게 만든다.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의 해설을 맡은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들려주는 말보다 들려주지 못한 말을 더 많이 남기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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