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없어 뭐라 말은 못하지만" 피해상인들 앞에서 발 '동동'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사진 가운데 뒷모습)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4지구 전소 피해 현장을 찾아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며 깊이 탄식하고 있다. ⓒ대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사진 가운데 뒷모습)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4지구 전소 피해 현장을 찾아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며 깊이 탄식하고 있다. ⓒ대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파탄 지경에 이른 참혹한 민생 현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피해 상인들 앞에서 "어떠한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반드시 돕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대권 도전 의지가 선(善)한 동기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18일 오후, 최근 대형 화재로 전소 피해를 당한 대구 서문시장 4지구를 찾았다.

    김영오 상인연합회장의 안내로 상인연합회 사무실을 찾은 반기문 전 총장은 상상하지도 못한 참화에 눈이 아직까지도 붉게 충혈돼 있는 상인들을 마주하자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피해 상인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얼마나 낙담하고 깜깜하겠느냐"며 "심심한 위로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나는 정부에 있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말은 못하지만…"이라고 무력감을 토로하면서도 "안전에 관한 규정은 더욱 강화하고 영업에 관한 규제는 완화해 자유롭게 생업에 복귀하실 수 있는 방향이 어떤가"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내가 혹시, 혹시라도…"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며 "혹시라도 어떠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직접 봤으니까 여러분들과 어려움을 같이 하고 어려움을 경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고, 국무위원이기도 했던 과거와는 달리 참혹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면전에 마주하고서도 '정부(政府)에 있지 않은 몸'이라 무얼 구체적으로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 안타까움이 배가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사진 가운데 뒷모습)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시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사진 가운데 뒷모습)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시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어떻게든 피해 상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어떠한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만약 대권의 꿈이 현실화될 경우 최선을 다해 돕겠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분석이다.

    패권주의 등 다른 대권주자들의 권력욕과는 달리, 반기문 전 총장의 대권의지가 국민에 대한 봉사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피해 상인들 앞에서 다른 말 없이 위로와 격려에 진력한 반기문 전 총장은 앞서 서문시장 상황실을 찾아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유엔사무총장 경력 등을 살려 '안전불감증'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상황에 적절한 조언을 한 것이다. 피해 상인들 앞에서는 격려에 전념하고, 복구 책임을 진 행정책임자들 앞에서는 사태의 원인을 진단한 것이 때와 장소에 꼭 맞는 언동이었다는 평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서문시장 상황실에서 윤순영 구청장 등을 마주한 채 "선진국에 많이 다니며 느꼈던 것은 선진국은 가장 신경쓰는 게 사람의 인명이라는 점"이라며 "우리가 아직도 안전불감증이 있다는 생각이 깊이 든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참사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유엔사무총장 재직 시절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전시에 영웅 난다고, 100만 달러 가지고 협상을 하면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 예산이 안 나오더라"며 "그러다 나중에 전쟁이 나서 결국 5억 달러, 9억 달러를 평화유지군(PKO)하는데 들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잠깐 신경써서 예방하면 어마어마한 재앙을 예방할 수 있는데, 다 지나고나면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며 "유엔사무총장하면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예방"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