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 조사-수사한 뒤 표결했어야...표결도 개별 혐의별로 하는게 온당"

  • 대통령제를 230여 년간 지속하고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이 시도된 것은 3차례였다.
    하지만 탄핵이 완전히 이뤄진 적은 없다.
    탄핵 대상이 되었던 3명의 대통령은 7대 앤드루 존슨 (1865-1869), 37대 닉슨 (1969-1974), 42대 클린턴 (1993-2001).

    이 가운데 닉슨클린턴의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 국회의 탄핵의결에서 과연 지금 박근혜 대통령처럼 여러 가지 사항(헌법 위반 13건, 법률 위반 5건)을 일괄적으로 단 한번 표결로 의결했는가, 아니면 개별적으로 의결했는가?
    둘째, 국회의 탄핵 이전에 우리나라처럼 충분한 조사 없이 했는가, 아니면 철저하고 장기적인 조사가 선행된 상태에서 했는가?
    이 두 측면에서 보자.

    닉슨 대통령의 경우를 보면, 하원의 법사위원회에서 5개 사항으로 닉슨 탄핵 사유 표결을 따로 따로, 다른 날짜에 시행했다.
    1974년 7월 27일, 첫 번째 탄핵사유인 [사법집행 방해](obstruction of Justice)는 찬성 27, 반대 11로 가결됐다.
    이틀 뒤인 7월 29일, 두 번째 탄핵사유인 [직권 남용](abuse of power)이 28-10으로 가결됐다.
    그 다음날인 7월 30일, [의회모독](contempt of Congress)이 21-17로 가결됐다.
    그리고 계속하여 두 개의 탄핵사유를 더 표결에 붙였지만, 두 개 모두 부결됐다.
    부결된 네 번째 탄핵사유 안건은 캄보디아 대한 폭격을 명령한 것이었으며, 투표결과는 12-26.
    역시 부결된 다섯 번째 탄핵사유 안건은 닉슨 개인의 세금미납부 의혹에 대한 것이었으며, 투표결과는 12-26이었다.

    참고적으로, 가결된 세 가지 탄핵사유는 모두 [워터게이트] 사건과 연관된 사항.
    1972년 6월, 워싱턴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위치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5명의 괴한이 침입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이들이 닉슨 대통령의 보좌진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결국은 특별검사 그리고 미국 의회가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과정에 닉슨이 대통령직을 이용하여, 즉 직권을 남용하여 정상적인 사법조사를 방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의회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의회를 모독하였다는 것이 탄핵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닉슨의 탄핵 전 과정에는 두 명의 특별검사가 등장했다.
    첫 번째 인물은 아치발드 콕스(Archibald Cox).
    1973년 5월부터 활동하다가 백악관의 내부 녹음테이프 제출 문제를 가지고 닉슨 측과 충돌하여 결국 같은 해 10월 20일에 전격적으로 해임됐다.
    두 번째 인물은 레온 자워스키(Leon Jaworski).
    11월 1일에 임명되어 녹음테이프 문제로 역시 백악관과 다투다가 이 문제를 연방대법원에 판단을 의뢰해서 녹음테이프 제출 판결을 받아낸 인물이다.
    즉 두명의 특별검사가 1973년 5월부터 약 1년 2개월 동안 조사활동을 한 연후에야, 1974년 7월에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위의 5개 탄핵사유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것이다.

    5개 탄핵사유 가운데 3개 탄핵사유가 이렇게 하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하자, 닉슨대통령은 하원과 상원 본회의의 탄핵 의결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판단하고 며칠 뒤에 스스로 사임해 버렸다.
    따라서 이 탄핵절차는 미국 하원과 상원 본회의 표결 없이 종결됐다.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닉슨 대통령 탄핵에 미국 의회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 일반 형사법정의 재판과 특별검사에 의한 철저한 범죄사실 조사 및 증명 과정이 선행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경우, 일반 형사 재판과 특별 검사 활동이 개시되기 전에, 국회가 탄핵소추를 먼저 의결했다는 점이 미국과 다르다.


  • 다음은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보자.
    1998년 12월 19일, 미국 하원 전체회의에서 (하원 법사위원회의 결의 관련 사항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당연히 이 전체회의 의결 이전에 해당 결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별 항목에 대한 투표가 이뤄졌다.
    먼저 (1) 대배심에 대한 위증(perjury to a grand jury) 항목은 찬성 229, 반대 209로 가결.
    (2) 사법절차 방해(obstruction to Justice) 항목 역시 221-212로 가결.
    (3) 폴라 존스(Paula Jones) 재판에서 행해진 또 다른 위증(a second perjury in the Jones case) 항목은 205-229로 부결.
    (4) 직권남용(abuse of power) 항목 역시 148-285로 부결.
    이렇게 하원에선 4개 항목 가운데 2개가 가결되고 2개는 부결됐다.
    참고적으로, 대통령 탄핵안은 하원에서는 과반수로 상원에서는 3분의 2 찬성으로 가결된다.

    1999년 2월 12일, 미국 상원의 표결이 진행됐다.
    (1)번 항목은 찬성 45 반대 55 (2)번 항목은 찬성 50 반대 55로 부결됐다.
    이로써 클린턴 대통령 탄핵안은 상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폐기됐다.

    이 모든 사건은 클린턴 대통령과 폴라 존스(Paula Jones)라는 젊은 여성 사이 성희롱 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를 하던 시절인 1991년 그녀에게 성희롱(sexual harassment)을 했다는 혐의였다.
    클린턴 측은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는 시점 이후에 이 민사소송에 응하겠다고 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미국 연방 대법원 1997년 5월 27일)했다.
    이에 따라 클린턴은 재임중에 이 소송에 직접 대응했으며 증언도 했다.
    이 사법절차 과정에서 클린턴은 대통령 재직중 다른 여성과 불법적인 성적관계를 가졌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아니라고 대답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 모니카 르윈스키와 백악관 내에서 모종의 성적 관계를 했던 것이 나중에 밝혀짐에 따라 위증죄를 비롯한 몇 개의 범죄혐의가 생긴 것.

    특별검사로 켄 스타(Ken Starr)가 임명되어 클린턴 대통령의 혐의를 조사했다.
    그는 1994년부터 클린턴 대통령의 또 다른 의혹사건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에 임명되어 계속적으로 활동하며 르윈스키 사건까지 모두 조사한 다음, 1998년 9월 11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스타 특별검사의 활동기간은 최대로 보면 4년 이상, 르윈스키 사건이 표면에 떠오른 이후로 보면 약 1년이 된다.
    즉 이 경우 역시 특별검사의 장기적이고 철저한 수사가 선행된 이후에 비로소 의회의 탄핵소추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 있다.
    닉슨 대통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 의회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일반 형사법정의 재판과 특별검사의 활동에 의한 철저한 범죄사실 조사 및 증명 과정이 선행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경우, 일반 형사 재판과 특별 검사 활동도 개시되기 전에,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였다는 점이 미국의 경우와 다르다.


  • 결론을 내리겠다.
    첫째,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회에서 일괄적으로 13개 항목을 표결에 회부한 반면, 닉슨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경우에는 세부적으로 개별적 항목에 대해 표결을 했다.
    둘째, 우리의 경우에는 국회가 별다른 조사없이 탄핵절차를 진행했던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철저하고 장기적인 조사가 선행된 상태에서 의회의 탄핵절차가 시작됐다.

    미국의 경우와 우리나라의 경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대통령제이며, 미국 대통령제의 풍부한 사례를 우리는 참조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나라 국회가 올바른 탄핵소추 절차를 진행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양현수
    전문 번역가,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 석사-박사.
    195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서강대 한국외대 강의.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 <트로츠키>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