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 추정해봐도 알 길 없어… 文, 책임있게 꺼내놓으라
  • 대선 한 달 전, 4·12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의 취재를 담당했을 때의 일이다.

    상주종합버스터미널 맞은편 더불어민주당 김영태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들어가니 '군대 휴가 나왔다. 아버지를 도와달라'는 취지의 글이 쓰인 피켓이 눈에 들어왔다.

    민주당 김영태 후보의 아들 강하 씨의 것이었다. 강하 씨는 공교롭게도 정확히 선거일 1년 전인 지난해 4월 12일에 군에 입대했다. 입대한지 1년이 될 무렵,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이다.

    군인으로서 휴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을 다물지 못할만한 사례다.

    이 뿐인가. 같은 선거에서 무소속 성윤환 후보의 아들 호진 씨는 선거운동 마지막날 서문사거리에서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도 신호등 색깔이 바뀔 때마다 계속 방향을 바꿔가며 동서남북으로 큰절을 계속했다.

    아버지의 당선을 바라는 간절함의 표시인지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보며 '선거가 무엇이기에 일가가 저렇게 다 고생을 하는가' 싶어 짠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성윤환 후보의 아들 호진 씨가 선거일 전날인 11일 저녁 상주 서문사거리에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큰절을 하고 있다. ⓒ상주(경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성윤환 후보의 아들 호진 씨가 선거일 전날인 11일 저녁 상주 서문사거리에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큰절을 하고 있다. ⓒ상주(경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군복무 중인 아들도 휴가 나와 선거운동하는 판에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4·12 국회의원 재선거로부터 불과 한 달 뒤에 열린 대선에서, 모든 후보의 자녀들이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특정 후보의 아들만 도통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장남 정석 씨는 직장인인데도 휴가를 내고 주말을 틈타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차남 정현 씨는 인륜지대사인 혼인이 코앞인데도 선거운동을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딸 설희 씨는 휴학계를 내고 배우자 김미경 여사와 함께 전국을 돌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아들 훈동 씨와 딸 담 씨 모두 아버지를 총력지원하고 있다.

    '대세론' 후보라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아들 준용 씨만 선거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직장인이라?… 어느 사업주가 유력 대선후보 아들 휴일도 없이 부리나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가 〈조선일보〉에 한 해명에 따르면 "직장인이라 시간을 뺄 수 없다"고 한다.

    홍준표 후보의 아들 정석 씨는 직장인인데도 휴가를 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4·13 총선 때 험지(險地) 전북 전주을에서 당선된 정운천 의원의 아들 용훈 씨도 휴가를 내고 부친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또 유세 때마다 큰절을 했다. 그런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백 번 양보해서 휴가를 낼 수 없는 직장에 다닌다고 하자. 5월초 황금연휴 기간에는 왜 부친의 선거운동을 돕지 않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사업주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유력 대선후보의 아들을 공휴일도 없이 부리고 있는가. 문재인 후보가 한 번 성을 내면, 지상파방송 사장이 벌벌 떨며 담화문을 내고, 보도본부장이 메인 뉴스가 시작하자마자 5분30초 사과방송을 하는 세상이다.

    도대체 어느 사업주가 휴일 밤낮도 없이 대선후보 아들을 부리는가. 후환이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아들 준용 씨가 한국고용정보원 입사 당시 제출했던 서류와 증명사진. ⓒ뉴데일리 사진DB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아들 준용 씨가 한국고용정보원 입사 당시 제출했던 서류와 증명사진. ⓒ뉴데일리 사진DB

    ◆'개념' 없어서?… 귀걸이 증명사진에 12줄 자소서 생각해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직장인"이라는 것은 이유가 될 수가 없다. 대체 부친의 선거운동 현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개념'이 없어서일까. 준용 씨는 '신의 직장'이라 입사경쟁이 치열한 공공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 5급 공채에 입사지원을 하면서, 학력증명서도 내지 않고 귀걸이에 점퍼 차림의 증명사진을 썼다. A4 용지 3매 이내로 작성해야 할 자소서는 불과 12줄만 써냈다.

    이쯤되면 '개념'이 없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선거운동은 국민에게 굽실굽실해야 하는 일인데, 혹여 귀걸이와 점퍼 차림으로 나타나 유권자와 욕하고 싸우며 주먹다짐이라도 할까봐 꽁꽁 숨겨두고 있는 것일까.

    일응 일리 있는 설명이지만 석연찮은 부분도 있다. 준용 씨는 지난 대선 때는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 때는 선거운동을 할만한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순으로 보면, 고용정보원 입사 ~ 지난 대선 ~ 이번 대선의 순인데, 개념이 없다가 생겼다가 다시 없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심상 아버지 지지할 수 없어서?… 스탈린과 그의 딸

    그렇다면 다른 이유일까. 혹시 양심상 아버지를 차마 지지할 수가 없어서일까.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아버지에게 비판적이었고, 급기야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 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뒤 펴낸 '나의 아버지 스탈린'이라는 책에서는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있어, 소련에서 금서로 지정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스탈린의 포지션에 놓는다면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모순이 있다. 그렇다면 2012년 대선 때는 왜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왔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5년 사이에 아버지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정치노선에 회의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실제로 지난 5년 사이에 문재인 후보에게 회의감을 느끼고 그 곁을 떠난 사람이야 정치권에도 부지기수로 많다. 박지원·손학규·김한길·김종인 등 한두 손으로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인데, 하지만 준용 씨가 '전향'했다는 증거는 없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 1일 경기 의정부 유세에서 눈흙문(눈에 흙이 들어가도 문재인)이라는 피켓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의정부(경기)=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 1일 경기 의정부 유세에서 눈흙문(눈에 흙이 들어가도 문재인)이라는 피켓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의정부(경기)=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어대문'인데 귀한 아들 뭣하러 고생시키나 싶어서?

    대세론이라 안주해서일까.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어대문)'인데 뭣하러 금쪽같이 귀한 아들을 험한 선거판에 내세우냐는 생각에서일까.

    무소속 성윤환 후보의 아들 호진 씨는 아버지가 '상주 후보 단일화'로 맹추격하고 있지만 1위 후보와의 격차가 도통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했다.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의 아들 용훈 씨도 '32년 만에 전주에서 보수정당 후보 한 번 뽑아달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선거현장을 누볐다.

    문재인 후보도 지난달 8일 경북 상주에 자당 소속 김영태 후보의 지원유세를 갔을 때, 군복무 중인 아들까지 휴가 나와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어차피 당선될 것이니 아들의 선거운동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는 유권자에 대한 또 하나의 오만함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 김철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6일 MBN에 출연해 말했듯이 "대구·경북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호구로" 보지 않는 다음에야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도대체 왜일까, 설마 의혹이 사실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7일 논평에서 "유승민 후보의 딸 유담 씨도 '가족이 선거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 않나"라며 "2012년 대선에는 아버지를 돕던 착한 아들이 지금은 왜 숨어버렸나"라고 '나올 것'을 촉구했다.

    같은 당 김유정 대변인도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해 '사람 질리게 한다'고 질타했던 안희정 지사의 아들마저도 문재인 후보를 온 힘을 다해 돕고 있다"며 "남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위해 저 고생을 하는데, 정작 진짜 아들은 머리카락도 안 보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에 부딪혔다.

    국민 40%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대통령의 자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있다는, 원내1당이 '든든하다'며 공천한 유력 대통령 후보가 아들의 특혜취업 의혹이 사실이라 선거판에 안 내놓고 있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다.

    아마 다들 이런저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고민해보다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으리라. 설마 의혹이 사실인 것일까.

  •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준용 씨의 사례는 정유라와 다르지 않다며, 제2의 탄핵 대통령이 나오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준용 씨의 사례는 정유라와 다르지 않다며, 제2의 탄핵 대통령이 나오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영원히 숨길 수 없다… 제2 탄핵 대통령 피해야

    문제는 숨긴다고 해서 영원히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이틀만 버티고 대통령만 되면 끝일까. 새로운 대통령이 서더라도 국회는 여소야대다. 의혹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의 추궁과, 경우에 따라서는 국정조사와 청문회, 그리고 만약에 여기서 위법사실이 발각된다면 특별검사의 수사까지도 피할 수 없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가 호소한대로 "제2의 탄핵 대통령이 나오는 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준용 씨 의혹은 나날이 커지면서 사안 자체가 복잡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고용정보원 특혜채용 과정만이 의혹이었지만, 이제는 휴직과 퇴직, 미국 유학 등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이 의혹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들어갔다.

    ◆친구·동문 '아무말 대잔치' 걷어치우고, 문재인이 나서라

    이 과정에서 문준용 씨의 대변인 격이라 할 수 있는 친구며 동창들까지 나서서 저마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사안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것이라면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국민들은 의혹의 사실 여부를 다 떠나서, 이제 문준용 씨가 이 판국에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딸 설희 씨는 선거전 초반 민주당 측의 각종 '네거티브 공세'의 초점이 됐었지만, 당당히 선거운동을 하고 다니니 사실무근인 의혹은 해 뜨자 서리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문준용 씨는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가 않으니 "숨는 자가 범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문재인 후보가 이제 책임있게 국민의 의구심에 답해야 한다. 다 떠나서 문준용 씨는 도대체 지금 어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