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힌 '이화' 인맥, 단순한 모교로 보기에는… 아는 은사는 누구?
  • 강경화 외교부장관후보자가 29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 인근에서 장녀의 이화여고 전학과 관련한 위장전입 논란을 해명한 뒤 취재진을 피해 차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강경화 외교부장관후보자가 29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 인근에서 장녀의 이화여고 전학과 관련한 위장전입 논란을 해명한 뒤 취재진을 피해 차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강경화 외교부장관후보자가 장녀를 이화여고에 전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한 아파트가 애초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친척집"이 아닌, 이화여고 전직 교장의 명의로 전세권이 설정된 재단 관사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강경화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하면서까지 장녀가 전학할 학교로 이화여고를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모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인맥을 고려한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선택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친척집" 거짓말… 심 전 교장 전면에 드러날까 염려됐나

    강경화 후보자를 지명한 지난 21일 인선 발표에서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후보자의 장녀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화여고에 전학하려고 친척집에 주소지를 뒀다"며, 선제적으로 위장전입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강경화 후보자가 2000년 7월 장녀와 함께 위장전입한 중구 정동의 아파트는 친척의 집이 아니라, 1982년부터 1995년까지 이화여고 교장을 지냈고 총동창회장도 역임한 심모 씨가 전세권을 설정한 집이었다.

    왜 "친척집"이라고 거짓말을 했을까. 강경화 후보자는 29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 인근에서 취재진과 만나 "남편이 청와대서 물어봤을 때 '친척집'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해명대로 남편이 잘못 대답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전세권자인 심 전 교장의 이름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꺼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심 전 교장이 이화여고 선배로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막역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희호 이사장과 심 전 교장은 1947년 결성된 서울의 대학생 모임 '면학동지회' 회원이었다. 정부수립 이전부터 오랜 친분을 맺어온 이화여고 선후배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희호 평전〉에 나온다.

    〈이희호 평전〉에 따르면,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한 이희호 이사장이 함께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친구를 심 전 교장에게 맡기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심 전 교장도 자갈치시장 옆 부둣가에서 궁색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이희호 여사가 부탁한 친구를 위해 방 한 칸을 선뜻 내줬다는 것이다.

    둘의 인연은 그 이후로도 반 세기를 넘어 쭉 이어졌다. 이희호 이사장의 자서전 〈동행〉에 보면, 영부인 신분으로 지난 2001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우호의 밤 행사에 참석할 때, 심 전 교장과 함께 방중했을 정도다.

    ◆영부인 자서전에서 실명으로 감사받은 강경화 후보자

    여기서 하나의 연결고리가 도출된다. 강경화 후보자도 이화여고 선배인 이희호 이사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강경화 후보자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희호 이사장 내외 간의 인연은 깊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당선인 신분으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통화할 때 통역을 맡았던 인물이 강경화 후보자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라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의 무게감이 매우 중했다. 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말을 강경화가 영어로 번역하면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흡족해하며,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듬해 강경화 후보자가 비(非)고시 출신인데도 외교부에 특채했다.

    강경화 후보자는 1999년 방한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도 동시통역을 위해 배석했는데, 이 때 이희호 이사장도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2년 이희호 이사장이 유엔 의장국 순번을 맞이해 아동특별총회에서 영어로 기조연설을 해야 할 때, 영어 연설문을 다듬고 자문 역할을 맡았던 인물도 강경화 후보자다.

    이희호 이사장은 자서전 〈동행〉에서 "내 임무는 임시의장으로서 영어로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하는 역할"이었다며 "외무부에 근무하는 강경화 씨가 관저로 와서 영어 연설을 지도해줘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고 실명을 지목해 특별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모교라서? 인맥 때문? 의구심 커지는 이화여고 선택

    강경화 후보자는 위장전입을 하면서까지 장녀가 전학할 학교로 이화여고를 고집한 이유를 자신의 모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29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엄마 마음에 (딸을) 내가 다니던 이화여고에 꼭 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봤을 때, 단순히 본인이 나온 모교라 장녀의 전학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 이화여고 총동창회장을 지내고 5년 전까지 13년간 교장을 맡았던 사람이 전세권자인 집에 위장전입을 했다. 또, 해당 학교 출신으로 당시에는 영부인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사람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아는 은사가 소개해준 주소지로 옮기게 됐는데, 그 주소지에 누가 사는지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해명도 사리에 맞지 않지만, 과연 이화여고가 본인의 모교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장녀가 전학할 학교로 선택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는 은사'는 누구인지, 이화여고가 단순한 본인의 모교 이상의 의미나 기능을 한 것은 아닌지, 강경화 후보자 본인의 추가적인 해명과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의 엄격한 추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