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만개 공공 일자리창출 정책, 방향 대전환해야 [박정규 칼럼]
  • 중국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해마다 수백만명씩 굶어죽는 상황이 발생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생명까지 위협받다가 극적으로 정치에 복귀한 덩샤오핑(鄧小平, 1905-1997)은 1978년 중국 공산당 간부들을 서유럽 5개국으로 시찰을 보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연구하게 했다. 이어 본인이 직접 경제 강대국인 미국과 일본을 방문, 닛산자동차 공장을 견학하는 등 자본주의 현장을 확인했다. 
    그는 또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를 초청했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경제는 망할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비생산적인 사회주의의 붕괴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도 했다.

  • “하이에크 박사. 우리 중국은 세계에서 인민이 제일 많고, 매년 식량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덩샤오핑)

    “나라가 인민들 먹는 문제까지 고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만 활성화시키면 됩니다.” (하이에크)

    “아니 대책치고는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덩샤오핑)

    “지금은 집단농장에서 똑같이 생산하고, 정부가 모두 거둔 후 똑같이 나누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일정 비율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얼마를 생산하든 일한 사람이 가져가게 해 ‘시장’에서 서로 사고팔도록 하면 됩니다.” (하이에크)  

    하이에크와의 만남 이후 등소평은 농지를 임대제도로 바꿨다. 놀랍게도 중국의 식량 생산량은 불과 2년 후 26%가 증가했으며, 그뒤로도 생산이 급속히 증가해 기아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어떤 정책이든 인민들만 잘 먹고살게 하면 된다)식 경제정책은 공산주의-자본주의로 양분된 세계에 새로운 경제학 성공모델을 입증시켰다. 

    중국은 오늘날 경제 선진국들을 제치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G2’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주목받는 문 대통령의 사회주의식 일자리 창출정책

    촛불민심을 업고 ‘대한민국호’를 이끌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81만개 공공부문 일자리창출 정책이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정책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부모 밑에서 캥거루족 생활을 하는 청년들에게 ‘공공일자리’ 공약은 가뭄의 단비 같은 약속이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한 세대 청년을 잃을 것”이라고 호소하는 대목에서 국민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아울러 청년실업 대책이 이 시대 가장 절실한 과제 중 하나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근의 청년실업률은 11%대를 기록하고 있다. 체감실업률은 24%에 이른다. 실업률이 높으니 전체적인 결혼이 늦춰지고, 출산률 저하로 이어져 결국 국가 전체적인 노령화를 초래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문재인 정부는 예산이 직접 투입되는 현장 공무원 17만5,000명, 공공 부문 34만명, 민간에 용역 준 일자리 흡수 30만명 등 81만명 규모의 인력을 채용해 일자리 창출에서 공공부문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공공일자리는 7.6%로 OECD 평균 21.3%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아 일각에서 주장하는 ‘공무원 과잉론’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통계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공공일자리 통계에 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학교 교사나, 군에 소속된 일반 병사, 민간에 위탁된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이 포함되지 않는 등 정부 통계에 많은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0명당 공무원 수는 40명으로 일본(41명)과 비슷한 수준이고 공무원 체계가 잘 잡힌 싱가포르, 홍콩보다도 많다는 통계도 대두된다.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은 한번 고용하면 해고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채용 후 정년 때까지 급여를 계속 지급해야 하고, 퇴직 후에는 연금까지 보장해야 한다. 2016년 기준 공무원 연금 적자가 2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현재 연금의 절반은 국민 세금에서 부담되고 있다.

    정부는 현장 공무원 추가 채용에 5년간 17조원에 사회보험 지원 등 4조원이 추가로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은 한번 고용하면 정년까지 강제로 퇴출시킬 수 없고, 이후 연금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할 경우 향후 30년간 200조~300조원의 재정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분석은 야당은 물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비생산적인 공무원 양산제도 왜 문제인가 

    전 세계적으로도 공무원은 ‘갑’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자리만 채우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각 부처가 필요한 인력을 제시하기도 전에 뽑는 숫자에 맞춰 소요처를 할당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기업들은 정글과 같은 글로벌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다. 30대그룹의 경우 2000년 이후 절반에 가까운 13곳이 해체되거나 탈락하는 등 민간기업 영역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반면 철밥통 공무원들의 경우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새로운 실적을 올리기 보다는, 대체적으로 현재 자리를 보전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일만 하는 ‘보신형’ 사고방식이 체화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일자리 창출정책에 대해 '세금 걷어 비효율적 철밥통 양산하겠다는 사회주의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필자는 90년대말 작고한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동행한 기자단의 일원으로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침에 배에서 내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에 주민들이 언덕에 빽빽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절반은 밭에서 일을 하는둥 마는둥 빈둥거리고, 나머지 절반은 언덕에서 잡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공산주의이다 보니 출근만 하면 일을 해도, 안해도 배급이 나오기 때문에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게 몸에 배 있다”고 하던 안내원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일자리 창출정책은 취지는 더할 수 없이 좋지만, 실제 17만여명의 고용이 이뤄질 경우 결과적으로 비생산적인 일자리에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 되지 않을 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한국의 청년 실업이 심각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이는 산업의 고도화와 아울러, 우리나라 고용인력의 고임금화에 따라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대졸 구직자들은 공공기관, 대기업만을 겨냥할 뿐 중소기업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전국의 공단에는 우리나라 인력을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동남아 인력으로 대체하는 기업들이 산적해 있다.   

  • ▶대기업, 적폐청산 대상인가? 일자리창출의 동반자인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일자리 정책의 시금석은 이번 6월 추경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만2,000명을 채용할 추경 예산을 확보하면,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무원 증원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번 추경에 지방 시도에 교부될 3조5000억 원의 예산이 포함돼 있고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추경안 처리를 지지하고 있어 입장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 방향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규제완화를 통해 민간기업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법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일자리가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민간기업으로 확대시키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규제완화’라든지 ‘대기업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확충’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을 적폐세력으로 규정해 단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형국이다.

    수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삼성 이재용 재판에서 기업들은 정권의 압박에 출연금을 반강제로 납부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50여년의 세계 경제사는 자원이 없는 국가일수록 ‘대기업 양산을 통한 국가경제력 활성화’가 가장 효율적인 결실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소기업 강국이던 대만이 더 이상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원인을 ‘대기업 부재’에서 찾아 최근 홍하이그룹과 같은 강력한 대기업들을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대기업을 양산하기도 바쁜 상황이다. 포춘지가 선정한 글로벌 대기업 수를 보면 지난해를 기준, 미국 134개, 중국 103개, 일본 52개인데 한국은 15개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사고에 젖은 측근 그룹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야 한다.

    ‘81만명 일자리 공약’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기보다는, 이제라도 경제학자들, 경제단체들, 현장기업인들의 기탄없는 의견들을 수렴해 일자리 국가 백년대계를 짜야 할 시기가 아닌지 되묻고 싶다. 교조적으로 대선공약을 이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한다면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이 일자리를 창출하며 살아갈 첩경은 무엇인가? 
    이제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해답을 찾을 때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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