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릿고개’를 잊은 이 나라에서는...
    아사율(餓死率) 0%와 ‘좋은 일자리’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북한 주민의 탈북 귀순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북한과 중국 사이 국경지대를 통한 탈북이 아니라,
    직접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南下)한 것이다.
      이달[6월] 초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북한 선원 중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고,
    지난 13일에는 북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한다. 18일에는 20대 초반 젊은이가
    나뭇가지와 스티로폼 등을 양 어깨에 끼고 한강을 헤엄쳐 건너왔단다.

      언론에서는 저 귀퉁이에 보일 듯 말듯 단신(短信)으로 처리했다.
    아무개 조간신문은 이와 관련하여 정부 관계자의 말이라며, “과거에도 보릿고개가 절정인 6월에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   ‘보릿고개’...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 ~ 6월,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의미한다.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인터넷 사전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한국의 봄철 기근(飢饉)을 가리키는 말”

      예로부터 ‘이 땅’에서만 있어 온 독특한 현상이었지만,
    이제 ‘이 나라’에는 이 말을 제대로 아는 국민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라져버린 과거지사(過去之事)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북녘에는 아직도 건재(健在)한다고 한다.

      이런 공공연한 일을 현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건
    무슨 속셈이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민은 굶주리는데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핵미사일을 개발에만 몰두하는
    북녘 세습독재 정권의 반인륜적...” 운운하는 건 아주 식상(食傷)한 스토리일 뿐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수구 꼴통’이나 ‘냉혈적 반북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인 게 요즘 세태다.

      지난해 5월 북녘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최고 돈엄(豚嚴)’이 직접 보고한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를 요약 정리한 결정서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5년 안에[5개년 전략수행기간 2016∼2020년] 식량 문제, 먹는 문제를 반드시 풀고
    인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정상화하여야 한다...”
      이를 접하면서 그 돼지새끼의 할애비와 애비가 60여 년 전부터 읊어온 “이밥에 고깃국” 타령을 떠올렸었다. “5년 내 식량문제 해결”은 그 타령과 궤를 같이한다.
    5년 후에는 어떤 넋두리가 나올지 기대해 볼만 하다.

      이에 비해, 이 나라에는 굶어죽는 국민들이 거의 없다.
    특히 젊은 층의 아사율(餓死率)은 0%에 가깝다. 아니 0%가 맞다.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한국의 청년실업률 상승 폭이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 중에 청년실업률이 전년 말보다 상승한 국가는
    한국 등 5개국뿐이었다.
      18일 OECD에 따르면 올해 4월 한국의 15∼24세 청년층 실업률은 11.2%로,
    지난해 12월 8.7%에 비해 2.5%포인트 상승했다...”
      일자리가 없어도 굶어죽지 않는 나라... 그 불가사의한 원인과 결과와 전망을 따져보려는
    정치가나 학자들은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대신 그 무슨 ‘좋은 일자리’를 찾고,
    그걸 만들겠다고들 난리도 아니다.

      과연 ‘좋은 일자리’는 어떤 걸까?

  • 이 논의가 본격화된 재작년 봄, 이리저리 젊은 청춘들과 그 부모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언론 보도도 유심히 지켜봐서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이러했다.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➀일은 적게 하되, 돈[보수]은 많이 받는 곳
      ➁이른바 ‘갑질’을 할 수 있는 곳
      ➂남들이 보기에 폼 나는 곳
      ➃대충 개기면서 월급 받고 정년도 보장되는 곳[더러 ‘철밥통’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제 와서 다시 따져보니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듯하다.
    선생님들과 공공기관의 그 무슨 ‘성과연봉제’라는 것도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하니...

      그래서 그런 걸까... 아무개 조간신문의 6월 18일 톱기사 중 일부다.

      “17일 오전 10시 서울을 제외한 7개 시(市)와 9개 도(道)의 9급 지방공무원을 뽑는 공채 시험이 치러졌다. 지방공무원 1만 315명을 뽑는 이날 시험에 지원 서류를 낸 지망생의 숫자는 22만501명. 역대 9급 지방공무원 공채 시험 지원자 중 가장 많은 숫자였다. 평균 경쟁률은 지난해 18.8대1을 훌쩍 뛰어넘은 21.4대1을 기록했다. 오는 24일 별도로 치러질 서울시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의 경우 1514명을 뽑는데 12만4954명이 몰려 평균 82.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보릿고개’를 직접 경험했던 이 나라 ‘경로석’ 대상자들과
    ‘보릿고개’를 지켜보았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는
    그저 경이로운 일이다. 아마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듯하다.
      굶어죽을 걱정 없는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만을 찾아다닐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쓸데없이 우울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면 ‘나쁜 일자리’는 누가 키우고 지키나?”

      덧붙여서 ‘보릿고개’ 얘기가 나왔으니, 차제에 이런 역사도 한번쯤은 되씹어 보자.
    북녘의 핵미사일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는 판이니 말이다.

  •   = 월남 적화(赤化) 직전의 월맹[북베트남]은 거지꼴이었다.
    인민들이 쌀을 두 끼만 먹는데도 한 해 80만 톤에서 100만 톤이 모자랐다.
    부식은 소금이 전부였다. 월맹군은 타이어를 잘라 [새끼줄로 묶은] 샌들(?)을 만들어 신었다.
    옷은 월남에서 뺏은 것을 걸치고 속옷은 누더기였다. 구엔 반 티우 월남[남베트남] 대통령은
    군사적 대비를 충고하는 이들에게 월맹의 이런 실정을 이야기 하면서,
    “월맹은 저대로 놔둬도 10년이면 망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망한 것은 월맹이 아니라 월남이었다.

    1975년 3월 10일 월맹이 남침을 개시한 지 50일 만인 그해 4월 29일 월남은 패망했다.
    지도부의 부정부패로 민심은 이반했고, 민족주의자 내지 민주화운동가로 위장한 용공(容共)세력이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군대는 싸우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본격적으로 보리를 수확하는 6월의 한가운데 서 있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