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림 "일본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승만 알리기 위해 연구 진행 중"
  • 제77회 이승만포럼 발표자 김영림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제77회 이승만포럼 발표자 김영림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행적을 해외에 알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신동아> 일본통신원이자 츄오대학(中央大學) 박사과정 김영림 씨는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소개한 논문을 일본 추오대학 학술지에 실었고, 그 내용을 1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제77회 이승만포럼에서 발표했다.

    김영림 씨는 일본인들에게 이승만을 소개하는 연구를 진행한 배경에 대해 "이승만은 일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독립정신을 통해 이승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논문을 작성했다"고 했다. 그는 <독립정신>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착수했다고 했다.

    ▽ 이승만의 독립국가에 대한 설계도 담은 <독립정신>

    김영림 씨는 <독립정신>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처음 꿈꾸었던 독립국가에 대한 설계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독립정신>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사료"이며 "이승만을 비롯한 한국 내의 개화파 지식인의 인식도 담았다"고 했다.

    이 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정신>을 김영림 씨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해 설명했다. 그는 이승만이 전반부에서 근대국가로의 생존 방침을 제시했으며, 후반부에서는 개항 이후 국제정세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독립정신> 전반부는 문호 개방과 독립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아승만은 자주의식에 근거 해외 문물의 수용해야 하며 위정자와 국민의 각성이 그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승만은 "통상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며 ”마음속의 독립정신을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만은 전제군주제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군주제가 자유를 박탈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발달하지 못하게 하며, 나라와 자신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평가했으나 점차 경계했다. 메이지유신을 보면서 이승만은 "일본인의 정신이 이렇게 독하면서도 강해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그들을 함부로 다룰 수 없으니 이 같은 국민성은 자국의 독립을 지키는데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이후 이승만은 일본의 러일전쟁 참여 명분을 의심했다. 그는 "10년 동안 일본이 두 번이나 전쟁을 하면서 이번에도 우리나라를 위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를 위한 일이 될는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정신 차려 봐야 한다"며 일본을 경계했다.

    김영림 씨는 <독립정신>을 통해 이승만의 청일·러일전쟁에 대한 관점도 설명했다. 그는 "이승만이 청일, 러일 전쟁이 단순히 그들만의 전쟁이 아닌 한국도 결부된 전쟁으로 봤다"고 했다. 두 전쟁에 대해 이승만이 '조국의 운명이 폭풍우를 만난 배와 같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 제77회 이승만포럼 발표자 김영림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제77회 이승만포럼 발표자 김영림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승만, "일반 대중에 세계정세와 근대화 필요성 알리려 집필" 

    김영림 씨는 일본인들을 위해 이승만의 <독립정신> 서술 배경도 설명했다. 이승만이 독립정신을 집필한 1904년은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이 '러일전쟁'을 치른 시기였다. 이승만은 자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이 시작되고, 남아로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 집필을 시작했다. 

    이승만은 <독립정신>을 순수 한글로 썼다. 일반 대중에게 세계정세와 근대화의 필요성을 읽기 쉽게 전하도록 의도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이승만은 한문(漢文)을 안다는 사람들이 부패했고 잘못된 관습에 물들었으며 배운 게 없는 일반 백성들의 각성만이 희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의도한 바와 달리 <독립정신>의 출판은 산전수전을 겪었다. 당시 한글로 된 활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고는 옥중 동지들이 보관하다가 밀반출했다. 둘둘 말아 위장해 나갔다. 결국 <독립정신>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

    출판은 늦어졌지만 의미는 퇴색하지 않았다. 출판을 도운 옥중 동지 박용만은 출간문에서 "아쉽게도 책의 출판이 늦어 그동안의 시세와 상황이 변화했기 때문에 독자가 흥미를 잃을 수 있는 것이 걱정이지만, 어느 사람이든지 필자의 의를 이해한 독자는 독립정신을 익히고 미래 조선의 인재가 될 것을 믿는다"고 전했다.

    <독립정신>에 대한 분석을 종합하며 김영림 씨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승만의 언급을 인용했다. 이승만은 "우리나라에서는 관리가 백성을 이끌어 주기를 기대할 수 없고, 기다릴 여유도 없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지도자가 되어 몇 배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두가 용기를 갖고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