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 항소할 것”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앞서 특검은 지난 7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바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앞서 특검은 지난 7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바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1심 법원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사실심 최종 판단’은, 2심 법원인 서울고법 재판부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상고심인 대법원 판결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둘러싼 특검과 변호인단의 공방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항소심 재판을 끝으로 마무리 된다.

    올해 10월 중순 이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항소심에서는,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올림픽 승마지원’(정유라 승마지원) 부분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가 유죄로 본 재산국외도피(일부 무죄) 및 범죄수익은닉 혐의는 뇌물죄 인정을 전제로, 그 ‘수단’을 별도로 처벌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올림픽 승마지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는 지 여부는 위 두 가지 혐의의 유무죄 판단과 직결된다.

    특히 변호인단은, 박영수 특검이 이 사건 공동피고인에게 적용한 혐의 중, 재판부가 뇌물공여-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 등 핵심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사실과 관련해, 직접 증거(스모킹 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심증’만으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항소사유 중 ‘심리미진’과 ‘채증법칙 위반’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부는 정유라씨를 비롯한 일부 증인들의 법정진술을 고려할 때, 이재용 부회장 등 이 사건 공동피고인들의 죄책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으나,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변호인단의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유죄의 결정적 증거로 삼은 정유라씨의 법정진술은, ▲증언 당일 특검이 새벽2시 쯤 직접 차량을 몰고 정씨의 집을 찾아가 그녀를 데리고 이동했다는 점 ▲당일 오전10시 정씨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9시간 가까이 특검이 ‘신변 보호’를 했다는 점 ▲불과 하루 전 변호인을 통해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한 정씨가, 돌연 마음을 바꿔 특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점 등에 비춰 볼 때, 자유로운 심신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정유라 증언의 재구성] 돌연 자진출두, 그날 새벽 무슨 일이 있었나?

    변호인단은 이런 사정을 이유로, 정씨 진술의 증거능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으나, 이날 판결 결과가 말해주듯 재판부는 항변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일부 검찰 측 증인의 법정진술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위 증언들을 유죄의 유력한 증거로 인정한 이유가 무엇이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가 ‘유죄’라는 심증을 미리 굳히고, 여기에 맞춰 판결문을 작성한 것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25일 오후,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김진동 부장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하자, 변호인단은 “재판부의 판결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선고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송우철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판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송우철 변호사는 ‘특검이 적용한 혐의를 1심 재판부가 모두 받아들였는데 이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유죄선고 전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선고 공판을 열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동피고인인 최지성, 장충기 피고인의 죄질도 무겁다”며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함께 기소된 박상기 前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과 황성수 前 전무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 받아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김진동 부장은,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그는, 뇌물공여 혐의 중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설립기금 출연 부분과 삼성이 독일 코레스포츠에 송금한 금액 중 일부에 대해서는 “뇌물로 볼 수 없다”며 무죄판단을 내렸다.

    김 부장판사는,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한 죄목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이 부회장이 부정한 이득을 얻은 사실이 없고, 정유라 및 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대한 대통령의 지원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점, 삼성그룹의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결정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박영수 특검은 올해 2월,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기 전 사장, 황성수 전 전무 등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특검은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사이에 이재용 부회장이 3차례에 걸쳐 박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하면서,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범 정부차원의 편의 제공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최순실 측에 금전적 지원을 한 것으로 봤다.

    특검은 이런 전제 아래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삼성의 설립기금 출연(204억원), 독일 스포츠컨설팅 회사인 코레스포츠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그 수수료 명목으로 송금한 금액(79억원 상당), 삼성의 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대한 후원금(16억원 상당) 등 모두 433억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변호인단은 1심 공판과정에서 “특검의 공소사실은 증거 없는 예단과 추론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독대’과정에서 이재용-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눈 대화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마치 옆에서 이를 들은 것처럼 직접 인용 형식으로 공소장을 작성횄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검이 유죄의 핵심증거로 제출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사실상 부정되는 등, 이 사건 혐의를 인정할만한 직접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고, 간접증거(정황증거)인 안종범 수첩과 ‘청와대 말씀자료’의 증거력이 사실상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뇌물공여죄 인정은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간접증거인 안종범 수첩과 청와대 말씀자료를 유죄판단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 부회장 등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심증’만으로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법조계 안팎에서 새로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